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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RRY'S Acquaintance/4) 메모

빨리 얕게, 천천히 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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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브랜드 CCO, 민은정



안녕하세요? 민은정입니다.
코카콜라, 펩시, 스프라이트, 환타. 이 이름들을 불러보면 입안에서 뭔가 톡톡 튀는 느낌이 들지 않으세요? 마치 탄산음료수의 톡 쏘는 맛처럼 말이죠.
테슬라, 쏘나타, 아반테, 티볼리. 이 이름들은 ‘강하게 시작해서 쭉 뻗어 나가는 느낌’이죠. 마치 자동차가 엔진을 켜고 고속도로를 멈추지 않고 달려가는 것 같습니다.
킷캣은 원래 ‘chocolate crisp’라는 이름으로 시장에 출시됐지만, ‘똑똑 부러지는 바삭한 느낌’이 드는 ‘kitkat’으로 이름을 변경하면서 지금 같은 성공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이름은 본질적으로 부르고 듣는 것이기 때문에, 청각을 자극합니다. 청각으로 사람들을 유혹하기 위해서는 그 브랜드가 전달하고 싶은 감각이 느껴져야 합니다. 듣는 이로 하여금 직접 만져보거나 맛보고 싶은 감정을 불러일으켜야 하죠. 부드러움이 느껴지는 마쉬멜로, 바삭한 맛이 느껴지는 킷캣처럼 말입니다.
여러분, ‘카누’라고 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아마 타는 ‘카누’보다 타먹는 ‘카누’를 먼저 떠올리실 겁니다. 한 단어의 연상 이미지를 바꿔버릴 정도로 카누는 국민커피의 자리에 올랐죠.

동서식품이 카누를 기획했던 2010년대 초반으로 돌아가 볼까요? 당시 모든 집과 사무실에서 노란색 봉지커피는 필수품이었죠. 하지만 커피 시장은 변하고 있었습니다. 단맛에 대한 염려, 카제인나트륨 소동, 무엇보다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이 왕성하게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동서식품은 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 ‘타 먹는 원두커피’라는 혁신 제품을 개발했습니다. 회의실에서 시제품을 맛보았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물에 타면 원두커피 맛이 나는 봉지커피?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입 맛보고 생각이 바뀌었죠.

문제는, 소비자들 역시 저처럼 큰 기대가 없을 것 같다는 점이었습니다. ‘또 다른 봉지커피 하나가 나왔나 보다.’ 이렇게 생각할 거 같았죠. 그래서 우리는 누구나 한눈에 새로운 제품이라고 느낄 수 있는 네이밍을 하자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당시 커피믹스들의 이름은 맥심 아로마골드, 테이스터스 초이스, 프렌치카페, 이런 식이었어요. 어떤 제품인지 있는 그대로 설명하는 이름들이죠. 우리는 이런 이름들과는 매우 다른, 심플하고 감각적인 이름들로 차별화를 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런데, 동서식품 담당자분들은 제가 제안 드린 후보안들을 보시고 ‘뭔가 부족하다’고 하셨습니다. ‘커피다움’이 부족했던 겁니다. 새로워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커피다워야 한다. 처음에는 그 요구가 딜레마처럼 느껴졌습니다. 새로움과 커피다움이 어떻게 동시에 느껴질 수 있을까? 커피의 본질을 찾기 위해서 ‘커피의 맛’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봤습니다.

커피를 처음 한 모금 머금었을 때 느껴지는 첫맛은 강합니다. 하지만 목을 넘어갈 때의 끝맛은 부드럽습니다. 강한 첫맛, 부드럽고 아련하게 남는 끝맛. 이것을 음성학적으로 해석한다면 강한 첫맛은 강한 첫 음절, 즉 거센소리이구요. 부드럽고 아련하게 남는 끝맛은 공기 속에 진동을 남기는 유성음으로 치환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카누라는 이름이 탄생한 겁니다. 강한 첫 음 ‘카’, 진동을 남기는 부드러운 유성음 ‘누’. ‘카누’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왠지 커피답다고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커피 맛의 구조와 음성학적 구조가 동일한 거죠.

커피, 카페는 C로 시작하잖아요. 그래서 카누의 스펠링이 K, A, N, U가 아니라 C, A, N, U가 맞지 않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C, A, N, U와 K, A, N, U를 비교하면, 어떤 게 더 임팩트 있게 느껴지세요? 대부분 K, A, N, U라고 대답하실 겁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알파벳을 하나씩 보여주었을 때, 어떤 알파벳에 전두엽이 가장 강하게 반응하는가? KAIST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이 가장 자극을 받는 알파벳이 K라고 합니다. 그 다음은 T, N, Y, Z 순서인데요. 이것이 C, A, N, U가 아닌 K, A, N, U로 최종 결정된 이유입니다.

동서식품 티오피도 비슷한 접근입니다. 강한 첫맛을 연상케 하는 강한 첫음 티, 부드럽게 넘어가는 끝맛을 연상케 하는 오, 받침 없이 여운을 남기는 피. 이렇게 구성했죠.
사실 티오피는 이 외에 커피를 연상시키는 또 다른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커피콩의 기원이 어디인지 아시지요? ‘에티오피아’입니다. 그런데 ‘에티오피아’에서 ‘에’와 ‘아’를 제외하면 티오피가 남습니다.


제품의 특징을 알리기 위해 설명적인 이름을 사용하면 빨리 이해됩니다. 하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이런 이름은 뇌에 쉽게 새겨지지만 깊게 새겨지지 않습니다. 너무 뻔한 사람은 매력이 없듯, 너무 뻔한 이름도 매력이 덜한 거죠. ‘chocolate crisp’같은 이름입니다. 이게 무엇일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이름은 뇌에 쉽게 새겨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번 새겨지면 깊이 새겨집니다. ‘kitkat’처럼 말이죠. 빨리 얕게 새길 것인가? 천천히 깊게 새길 것인가? 우리 브랜드를 소비자의 머리속에 천천히 그러나 깊게 새기고 싶다면, 소리가 가진 감각의 힘을 활용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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